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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우리의 얼을 찾아서(8) ‘드리개’
작성자 s**** (ip:)
  • 평점 0점  
  • 작성일 2015-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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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회수 172



 

드리개’는 매달아서 길게 늘어뜨리는 장식으로 수식(垂飾) 또는 수하식(垂下飾)이라 불리며 형태적으로는 귀걸이와 유사하나 길이 또는 출토상태에 따라 귀걸이와 구분이 가능하다.

 

 

드리개는 금관이나 금동관의 화려함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관테의 둘레에 장식한 것으로 형태는 상하로 길쭉한 나선모양의 장식 여러 개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경주시 황남동 미추왕릉 지구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무덤인 황남대총에서 발견된 금관(본지 348호 기사 ‘금관’ 참조)은 신라 금관을 대표하는 것으로 높이는 27.5㎝, 아래로 늘어뜨린 드리개 길이는 13∼30.3㎝이다. 원형의 금장식을 균형있게 배치시켜 금관의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였고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드리개는 좌·우 각각 세 개씩 대칭적으로 굵은 고리에 매달았다. 바깥의 것이 가장 길고, 안쪽으로 가면서 짧아지는데 장식 끝부분 안쪽에는 머리띠 부분과 같은 푸른색 곱은옥을 달았고, 바깥쪽에는 나뭇잎 모양의 금판을 매달았다.

 

 

 

신라의 드리개 중 가장 화려한 형태는 미추왕릉지구에서 출토됐다. 이 드리개는 관테의 좌우에 매달았던 것으로 속이 빈 금구슬 수십개를 끈으로 묶고 맨 아래에는 곱은옥을 매달아 장식했고, 그 위쪽에는 2~3줄의 작은 장식을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금구슬은 목걸이의 장식으로 많이 사용됐지만 이것은 드리개로 쓴 특이한 예이다.

 

 

 

‘일본서기’에는 신라를 ‘눈부신 황금의 나라’로 표현하고 있는데, 이에 걸맞는 유물이 바로 금제 허리띠라고 한다.

 

 

 

금제 허리띠는 금관이 출토되는 곳에서 잘 발견되는 유물로써 금관과 함께 무덤에 묻힌 사람의 사회적 지위와 신분을 잘 드러내며 대부분 발견 당시 관 안에서 착용된 상태로 출토됐다고 한다.

 

 

 

금관총에서 출토된 금허리띠는 얇은 금판으로 만든 40매의 띠꾸미개와 띠고리, 띠끝장식으로 구성됐으며, 띠드리개를 갖추고 있다. 띠드리개는 타원형판과 방형판을 교대로 연결하여 만들었는데, 띠드리개 중 가장 긴 것은 타원형 장식이 10개로 구성돼 있고, 끝에는 세 개의 방울이 매달려 있다. 나머지 드리개 장식 맨 밑에는 곱은옥, 용무늬 맞새김 장식, 물고기 장식 등이 매달려 있으며, 세 줄은 사슬과 속이 빈 금구슬을 사이사이 연결하여 드리웠다.

 

 

 

원래 허리띠에 물건을 주렁주렁 매달고 생활하는 것은 북방 유목민족의 풍습이라고 전해지는데, 그들은 손칼이나 약통 등 평소 즐겨 사용하는 물건을 매달고 다녔으며, 중국의 남북조시대부터 중국이나 우리나라로 전래되었다고 한다.

 

 

 

그 후 허리띠는 원래 가지고 있던 실용성은 사라지고 비 실용품으로 전환됐다. 이 중 숫돌과 족집게는 철기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이고, 약통은 질병의 치료와 관계되는 것이며, 곱은옥은 생명을, 물고기는 식량 또는 다산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따라서 이 허리띠의 드리개에는 당시 왕이나 제사장이 관장했던 많은 일이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www.diamond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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