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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예전승과 21세기 문화창조를 위한 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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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예전승과 21세기_01 

 

 

어느 나라든 국가를 대표하는 예술품이 있다. 예술품 중에서 작은 조각 예술품은 공예품으로 분류되며, 만드는 과정에 큰 차이가 없지만 크기가 큰 것은 건축물로 분류된다. 즉 예술품은 크기와 상관없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품이 뭐냐 하고 물을 때 다뉴세문경, 신라 금관, 석굴암, 성덕대왕신종, 고려청자, 금속활자 등을 말하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유물이나 유적들은 당시 최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공예가의 손에서 탄생된 것들이다. 이 가운데 신라 금관은 세계 최고라 해도 지나침이 없는 인류의 문화유산이다. 한국은 이런 세계 최고의 공예품이 수두룩하며, 그 어느 나라보다도 많은 나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간단한 예는 짧은 지면에 많은 것을 얘기하기 위한 대표적인 예에 불과하다.

 

한민족이 이런 훌륭한 공예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8,000여 년 전 유적인 강원도 고성군 문암리 유적의 옥기, 그리고 같은 시기 만주지역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옥기들과 공예품들은 오늘날 전 세계 고고학자들에게 비상한 관심을 일으키는 근거가 되고 있다.

 

이런 공예품을 만드는 전통은 훗날 한국사에 많은 문화재인 신라 금관, 석굴암, 각종 탑, 그리고 건축물, 명암이 뚜렷한 조각예술, 고려청자, 인쇄술 등을 남겨놓은 기술의 원천이 되었다. 이 전승의 결과는 곧 고고학자들이나 예술사가 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 가치는 지속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이런 과정은 비단 한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공통의 현상이다. 그러므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에는 오래 전승된 공예품들이 많이 있다. 이렇게 시대를 뛰어넘어 전승된 공예품들은 만들어졌을 당시는 이웃 지역과의 교역에 중요한 물품이 되어 국부 창출에도 큰 역할을 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대에 이르러서 문화국으로 분류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대부분의 공예품은 만들어질 당시는 사치품, 또는 귀중품으로 구별되어 경제적 대가가 지급되는 상품이었다. 즉 그 당시로는 가장 귀한 물품이었으며, 이런 현상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공예품이 만들어지는데 이는 먼 훗날을 내다보고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당장 오늘날의 거래를 위하여 만드는 것이다. 이는 비단 한민족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모두 그렇다.

 

한국문화사를 연구하다 보면 앞서 말한 각 시대별로 한국을 대표 할 수 있는 문화재들이 있다. 그런데 조선 중기쯤에 들어서는 전 세계에 내놓고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받을 만한 공예 문화재가 많지 않은 편이다. 이 시기부터는 공예품보다는 글씨와 그림으로 대체된 것 같다. 당시 공예품이라면 청화백자가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수 있고, 대부분 글씨나 그림이 주를 이룬다. 이런 한계로는 세계인들을 사로잡기 어렵다. 물론 이런 현상은 공예품이 없어서라기보다는 발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더 합당하다고 합리화를 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 중기 이후부터 공예품을 만드는 많은 집단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 자리는 중국 수입품으로 대체되었다. 17세기 유럽의 통상을 주름잡고 있었던 네덜란드의 유대인들은 청나라와 무역에서 청의 조건이 까다로워지자 조선과 무역을 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미 은을 거래하고 있던 일본의 반대와 일본에 잡혀갔던 조선의 도공들의 기술 수준을 믿고 조선이 아닌 일본과 교역을 시작하였다. 일본은 납치해간 조선 도공의 기술력으로 조일전쟁의 경제적 손실을 극복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유럽사회에 일본의 가치를 충분히 알리기 시작했다. 거꾸로 조선은 일본과의 경쟁에서 점점 밀리게 되었다.

 

이런 영향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 적지 않은 공예품을 외국에서 수입하여 판매하고 있다. 기술적으로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라 본다. 한국인의 창의력과 손 재능은 전 세계인이 인정하는 것이다.

 

글쓴이는 어려서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들에게 국가에서 큰 영예를 안겨줬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대부분의 국민이 이런 올림픽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지만, 글쓴이는 이 세계 기능올림픽에서 계속하여 한국 선수들이 우승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재능이 기반이 되어 성공한 산업이 반도체 부분이 아닌가 한다. 주지하다시피 반도체는 현대 산업의 기본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는 정밀하게 한국인 손에서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 반도체는 한국 경제의 근간이 되었고, 전 세계 첨단 산업의 기초가 되고 있다. 반도체는 소모품이다. 그러므로 거의 당대에 없어진다.

 

이제 한국은 이러한 정밀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몇 백년이상 지속할 수 있는 인류 문화재를 만들어야 할 때라고 본다.

 

몇 년 전 미국의 엘 고어 전부통령은 한국의 우수한 문화전통을 극찬하였다. 그 극찬의 가장 큰 이유는 고려 시대 지식인들과 금속장인들이 만든 금속활자가 세계문화를 바꾼 원동력에 대한 것,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보화시대를 한국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곧 한국인에게 내재되어 있는 우수한 문화전통에 대한 칭찬이기도 하면서 다음 세대에도 한국이 세계 변화를 주도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엘 고어의 말처럼 고려 시대는 아랍인들과 송나라 사람들이 고려의 우수한 지식 상품을 사려고 먼 바닷길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녀갔고, 조선 시대 조선인들을 중국에 홍삼을 들고 가서 중국 물건들을 사가지고 왔다. 고려는 세계적인 강국이었고, 조선은 고려같이 되지 못하였다.

 

고고학을 연구하다 보면 많은 공예품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이 공예품들이 어떻게 어느 지역으로 유통되었는지에 대한 추적을 연구한다. 또한 공예품들의 분석 결과는 당시 사회를 평가하는 하나의 지표가 되기도 한다. 즉 과학적으로, 기술적으로, 예술적으로 훌륭한 유물들이 확인되면 그 시대는 훌륭한 시대로 평가한다. 이런 평가 기준은 미래사회라고 해서 특별히 바뀔 것 같지는 않다.

 

현재 상황으로 미래를 예측해본다면 다음과 같은 결과도 나올 것이다. 현재 인사동에서 팔고 사는 기념품들의 대부분은 중국 제품들이다. -이 제품들과 한국산과 비교했을 때 한국산이 훨씬 우수하다는 것은 이미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다- 이 제품들을 가지고 평가를 해보면 2000년대 초반은 서울은 중국 땅이거나, 혹은 중국의 선진문물이 판치던 곳으로 평가가 나올 것이다.

 

글쓴이는 앞에서 몇 가지를 제시하였는데, 그중에 고려 시대를 근거로 하였다. 고려 시대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활용한 강대국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반대로 예술적으로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는 조선 시대 예로 들었다. 조선 시대는 ‘청빈’이 강조되었고, 이런 연유로 부자는 결코 자랑이 아닌 사회였다. 이런 사회적인 풍조는 새로운 좋은 기술이 나와도 이 기술들이 사장되거나 다른 나라로 빼돌려졌다. 대표적인 예로 조선 시대 은을 제련하는 기술은 세계 최첨단이었으나 조선은 이 기술을 활용하지 못하였다. 은 제련 기술은 일본으로 넘어갔으며, 그들은 이 기술을 이용하여 유럽과 교류를 시작하였다. 이후 유럽은 일본의 기술력을 인정하였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일본은 조선을 능가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은 결국 좋은 결말을 보지 못하였다. 물론 이런 예가 조선이 기우는 데 가장 큰 조건이 된 것은 아니었다. 여러 원인 중에 하나가 될 뿐이지만, 이를 바탕으로 지금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서양사회에는 프리메이슨 집단이 있다고 하는데 실체는 잘 알 수 없지만, 이들은 고대 ‘석공조합’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석공 조합은 세 가지 측면에서 유럽사회에 공헌하였다. 첫째, 다양한 기술이 이들을 통해서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기실 오늘날 유럽의 중요한 문화재인 여러 궁전, 그리고 교회당이 석공조합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들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둘째, 이들을 통해서 돈이 움직여졌고, 이를 통하여 경제의 활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유럽의 많은 건축가나 공예가들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셋째, 이들을 통하여 유럽문화가 창조, 발전, 전승되었다는 것이다.

 

인사동의 외국제품을 보면서 우리의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할 것이다. 역사의 경험을 보며 고려 시대를 모델로 할 것인가, 아니면 조선 시대를 답습할 것인가를 생각해볼 때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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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semigold

등록일2015-05-20

조회수5,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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